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총 5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신과 정신에 대해 다룬 1,2장과 감정과 인간의 감정에 대한 예속을 다룬 3,4장, 어떻게 감정을 극복하고 이성에 따라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다룬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스피노자의 신은 인격신이 아니다. '에티카'에서 신은 자주 자연과 동일시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그 특징은 목적도 의도도 없이 존재하며 다른 모든 것들의 근거가 되어준다. 스피노자에게 유일한 실체는 신뿐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신의 변용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신'은 어느 정도 노자의 '도'를 떠올리게 한다. 노자의 '도'는 자연의 운행법칙을 나타내는 것인데 '도'의 특징은 목적과 의도 없이 운행되며, 존재하는 모든 만물의 근거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일치하지 않는 점도 많이 있다. ) 또한 '에티카'와 '도덕경' 모두 선과 악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증오와 분노를 사랑과 관용으로 극복하려는 태도는 자연의 운행법칙인 '도'를 본받아 삼가며 내려놓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도덕경'의 태도와도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
3,4장에서는 감정과 감정에 대한 예속에 대해 다루는데, 스피노자에게 대다수의 인간은 감정에 종속되어 좋은 것을 보고도 나쁜 것을 택하는 예속 상태에 있다. 책에서는 여러가지 감정 상태, 기쁨과 슬픔, 자만심이나 겸손함, 사랑과 욕망, 희망과 공포 등의 감정들이 다루어진다. 하지만 자유로운 삶이란 이성에 따르는 삶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인간의 감정을 파악함으로서 그 강제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며 모든 것은 신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악이란 없으며 이 것을 인식함으로써 신을 사랑하고, 죽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닐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자연질서에서 벗어나 개성을 추구하는 것을 자유로움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어리석은 태도이며 주어진 신의 섭리안에서 이성의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자유로운 상태이다. 이런 삶의 태도는 키에르케고르의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2부에 나타나는 태도를 떠올린다. 여기서는 운명, 즉 주어진 조건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껴안음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태도는 또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에서 투쟁하는 인간으로서의 주인공의 입장과는 대비되는데 여기서 주인공은 보편적 질서 밖으로 벗어나 개성을 성취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하지만 개성을 획득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는 순간 이를 지탱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상태로 넘어가며 그 결과는 죽음뿐이다.
러셀의 '서양 철학사'에서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개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유용할 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악행을 보고도 눈 감고 분노할 지 모르는 태도라며 경계한다. 스피노자와 달리 러셀은 전체로서는 악이 없을 지 모르지만 개별적인 악은 존재하며 이를 제거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내가 읽은 바로는 스피노자 또한 개별적 악을 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예를 들면 스피노자는 자선사업에 대해 여성적인 동정심이 아니라 이성의 질서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즉 가난을 보며 마음이 저려오는 감정이입과 슬픔 등 일차적 반응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판단 아래 가난을 제거하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선사업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헨리 소로우의 '월든'에서도 엿 볼 수 있다.) 범죄자를 처단하는 데에도 이런 태도를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개인적 증오나 보복심에 불타기보다는 그런 강렬한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범죄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과 범죄로 인한 피해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에티카'는 쉬운 책은 아닌데다가, 철학 공부도 부족하고 비전공자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정도가 더 할 것이다. 1,2장은 형이상학으로 어려운 정도가 더 심해 나는 감정의 예속 상태와 그 극복을 다루는, 즉 실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는 3,4,5장을 먼저 읽었으며 그 이후 1,2장을 읽었다. 책의 개념 중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이익'에 관한 것인데 스피노자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 때 최선의 사회가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각자의 이익추구가 서로 충돌하며 발생하는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스피노자도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각자는 자신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을 긍정하는 요소들을 강조함으로서 다른 사람의 존재를 축소시키기 때문에 결국 인간 본성상 인간은 서로를 증오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보아도 스피노자가 말하는 '이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이익'과는 다른 것일텐데 이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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