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은 쥘리엥 소렐이라는 한 젊은 청년의 삶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인 스탕달은 집필 당시인 1800년대 초반 프랑스의 시대상을 소설 속에 녹여내며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이전 폭풍전야의 고요함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꽤나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인공인 쥘리엥은 가난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뛰어난 지적 수준으로 사제의 눈에 들어 훌륭한 교육을 받게 되는 인물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영웅적 정신으로 성공하는 나폴레옹을 동경하며 출세의 길을 도모한다. 결국 쥘리엥의 삶은 일반적인 눈으로 보기에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삶의 마지막에서 쥘리엥은 영웅적이고 화려한 삶 외의 행복이 있음을 깨닫고 차분하고 충만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쥘리엥은 뛰어난 두뇌와 명석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계급과 시대적 관습으로 인한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성질을 갖기 때문에 시대비판적이고 예언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
쥘리엥 외의 또다른 중심인물로는 레날 부인과 라몰 후작의 딸 마틸드가 있는데 레날 부인은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헌신적인 사랑을 쥘리엥에게 주며 쥘리엥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주는 인물이다. 레날 부인은 베리에르 시의 시장인 남편을 속이고 미남 청년 쥘리엥과 사랑에 빠지지만 남편과의 결혼이 비자의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기혼자의 연애는 저항적이고 진실된 성격을 띄고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레날 부인은 쥘리엥과의 연애로 인해 자신에게 닥쳐올 파국을 감수하고 결단있는 행동을 하는데, 이는 과감하고 성스러운 느낌까지 들게 한다. 스탕달은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후에 '자신은 어머니를 여인을 생각할 때와 같은 감정으로 사랑했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런 어머니를 향한 감정이 헌신적으로 쥘리엥을 사랑하는 레날 부인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아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개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욕망을 파악하고 이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스탕달의 심리적 통찰 능력을 느낄 수 있다.
또다른 쥘리엥의 연애 상대인 마틸드는 쥘리엥이 바라던 사회적 지위와 상당한 재산을 바로 코 앞에까지 가져다준다. 마틸드의 성격은 당시 귀족층에 횡행하던 무사안일주의를 경멸하고 영웅적이고 고귀한 삶을 꿈꾸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마틸드의 감정변화가 너무 극심하여 사랑에 빠지는 여성의 변덕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의 병적 조울증에 가까운 마틸드의 행동은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마틸드는 끊임없이 주위 인물들의 부르주아적 태도를 조롱하지만 정작 마틸드의 경우에는 영웅적 행위와 정신적 고양을 중시하는 태도가 지나쳐 정신적 둔감성마저 느껴진다. 마틸드의 감정변화에 맞추어 쥘리엥마저도 마틸드에게 변덕스런 태도를 보여주는데 이 긴 소설을 읽으면서 독서를 그만둘까 하게 만들 정도로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 변덕은 그 광적인 까르마조프가의 사람들보다도 심하게 느껴지는데 심리묘사에서도 스탕달은 도스토예프스키보다 조금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물에 대한 몰입이 어려웠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가서 쥘리엥의 최후에 이르러 마틸드는 쥘리엥으로 하여금 레날 부인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해주고 또한 쥘리엥에 대한 레날 부인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장치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때 마틸드의 성격이 어느 정도는 납득된다.
뛰어난 인물이 사회적 관습에 의해 파국을 맞게 되는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는 당시의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보여준다는 점이 이 소설이 가진 의미 중 하나이지만 그런 점들 때문인지 소설은 당대 프랑스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소설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소설가가 진흙탕을 비추면 사람들은 더러운 진흙탕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을 비난한다. '는 재미있는 말을 하는데 자신의 작품 속 세계관이 공감받지 못하는 데에 대한 섭섭함을 느낄 수 있다.
또다른 흥미로운 점으로는 스탕달이 당시의 유명 범죄 사건들에서 이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그를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한 것이다. 스탕달은 평소에도 범죄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고 범죄란 정신이 말라 비틀어진 현대인들 속에서 정신의 고양, 고상하면서도 폭팔적인 정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신문의 사회면, 그중에서도 특히 범죄사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소설 속에 표현한 사람은 스탕달 외에도 도스토예프스키가 있다. 두 작가 모두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는 점과 소설 속 주인공이 뛰어난 두뇌를 가졌음에도 빈곤과 지위로 인해 파국에 다다르게 된다는 점도 유사하여 흥미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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