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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생각

천규석, 윤리적 소비 <책 추천>

나는 평소에 무엇을 구입하고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 지에 대해 걱정이 많다. 무엇을 구매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이 남는 것이 요즘의 소비라고 생각한다. 이 찜찜함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우선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관련된 것이다. 뒷면에 작은 글씨로 각종 화학성분들이 빼곡히 적힌 가공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기나 우유, 계란을 사더라도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제가 걱정이 되고 채소나 과일을 사도 농약 걱정이다. 두부나 기름류는 GMO가 마음에 걸리고 해산물은 방사능과 중금속 생각이 딸려온다. 음식 외에도 요즘의 나의 걱정은 몸에 닿는 것에까지 번져 생리대, 휴지에 대한 의구심은 물론 옷이나 가방 등의 염색 과정과 그 속에서 발생될 수 있는 유해물질에 관한 생각에까지 미쳤다. 걱정은 건강에 대한 영향 외에도 있는데 각종 소비의 부산물인 수많은 쓰레기들(상자,비닐, 플라스틱 등과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버려지는 상품들), 대기오염이 환경에 미칠 영향과 동물 복지에 관한 생각들이 그것이다.




어느 날 중고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라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평소에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답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얼른 책을 집어들었지만 예상 외에 이 책은 '윤리적 소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단어 그대로의 추상적 의미로의 윤리적인 소비를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공정무역','착한 커피' ,'착한 소비' 등의 상표를 붙여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쓰고 있는 요즘의 행태이다.


저자가 '공정무역' 식의 마케팅, 소비 행태에 대해 비판하는 점은 이렇다. 대체로 '착한 소비'가 강조되는 제품들은 커피,초콜릿,설탕 등의 기호식품이다.  기호식품은 말 그대로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며 대체로 이런 기호식품들은 열대,아열대 지방의 저개발,저소득 국가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그보다 더 부유한 나라들로 수출된다. 이는 현재에 국한된 내용은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기호식품으로 큰 돈을 벌고자 하는 식민주의자들은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국가들에서 그들이 먹고 생활하는데에 필요한 작물들을 심을 땅을 빼앗아 여기에 사탕수수나 커피 등을 대량재배하였다. 이를 유럽 등지의 국가에 수출해 큰 돈을 벌 수 있었고 이런 한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된 기업가, 지주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 재배 면적은 날로 넓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그 땅에 살던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먹지 못할 상품으로서의 작물을 재배해야 하고, 이를 통해 번 돈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곡물을 구입하는 데에 비싼 돈을 지불해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한 사탕수수같이 대가 길고 억센 식물들은 토지의 영양분을 쉽게 빨아들여  황폐화시키기 때문에 윤작이나 간작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식민주의 기업가들은 당연히 연작을 하였고, 계속되는 벌채를 통해 원주민들의 생활의 터전을 파괴시켜 왔다.




이런 비판에는 원주민들이 단일작물 대량생산 즉 플랜테이션을 통해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을 드는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넓은 땅에 단일 작물만을 재배하는 모노컬쳐 식 농업으로는 자급자치가 불가능하며, 돈을 벌게 해준다는 구실로 원주민들을 세계 시장경제에 종속시키고 곡물가격 변동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자급자치 지역공동체만이 횡포한 국가주의,세계시장에 맞설 수 있는 대안으로 주장하는데, 세계자본주의와 기업가들의 수족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국가는 계속해서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게끔 불구로 만드는 과정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시각에서는  어느 당이 집권하든 국가주의적 전횡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며 복지국가,사회주의국가 모두 지배층을 위한 국가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복지국가는 가난을 구제하겠다는 명목으로 강제로 세금을 걷어가지만 이 중 온갖 부정부패와 감시 부재로 줄줄이 새어나가는 돈이 어마하며 이는 현재와 같은 말뿐인 지방자치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역 자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국가도 국가가 자본가의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는 점에서 자본주의국가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음을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시장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보다 돈을 조금 더 준다는 명목으로 '공정 무역','착한 커피'라고 이름 붙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단지 틈새시장을 노려 그 사이에서 적으나마 이익을 취하려는 욕심 아니냐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진정한 윤리적 소비라는 것은 그 땅에서 재배된 작물을 그 땅의 사람들이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민들이 시장경제질서의 종속에서 벗어나 자급자치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이며, 또한 끊임없이 물자가 비행기와 배에 실려 운반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대규모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다.


이 책은 윤리적 소비와 관련된 내용 이외에도 다양한 측면에서 국가주의적 통치 방식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담고 있다. 진보와 보수, 우파와 좌파의 이분법으로 나뉘어 형식적 언쟁만 반복되는 듯한  현재 한국의 정치,사회 속에서 제3의 길을 말하는 목소리는 반갑다. 작가의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윤리적 소비'는 평소에 무심코 넘기며 살아왔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읽어볼만 할 것이다.